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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헌마을과 새마을"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9.26
첨부파일1
조회수
1205
내용

개발 거부한 도시의 헌마을, 공동체 가치를 찾다
ㆍ한국민속학회 ‘헌마을과 새마을 - 개발·생태의 민속학’

1951년 미국의 인류학자 오스카 루이스는 멕시코시티 교외의 테포스틀란이라는 빈민지역을 찾았다. 그는 장기 현지조사 결과를 토대로 <산체스네 아이들>을 출간하면서 이른바 ‘빈곤문화’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빈민지역 거주자들은 무기력함·의존성·비역사성·가부장적 사고 등 특징적인 생활양식과 태도·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후손들은 이러한 문화를 체화함으로써 빈곤이 대물림된다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빈민촌을 해체하고 강제이주시키거나 중산층의 가치를 이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떨까. ‘무허가 판자촌’이었던 부산 문현동의 ‘안동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조관연 부산대 민족문화연구소 연구원은 루이스와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그는 “주민들의 자포자기, 열등감, 피해의식, 공권력에 대한 불신, 불량한 주거환경은 ‘빈곤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기업과 정부가 은밀하게, 경우에 따라서는 공공연하게 추진한 ‘가난의 정치’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지난 1일 한국민속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마을가꾸기 사업과 부산 안동네 마을의 변화’라는 논문을 통해서다.

조 연구원은 주민들의 구술을 토대로 ‘안동네’의 형성과정을 짚었다. 부산에서 가장 늦게 형성된 산동네인 ‘안동네’는 공동묘지 위에 있다. 1983년 이사온 주민 박모씨(71)는 “무덤과 무덤 사이에 천장을 비닐로 덮고, 그 앞뒤로 나무로 된 고기상자를 몰래 가져다가 기둥으로 만들어 살기 시작했다”고 증언한다.

‘안동네’는 부산 남구 문현동에서 부산진구 전포동으로 이어지는 진남로 왼쪽의 갈마산 기슭 5만5000㎡에 무허가 목조 및 슬레이트 건물 250여채가 모여있는 곳이다. 공동묘지 위에 만들어져 ‘어둡고 칙칙한 동네’로 여겨져 왔으나 자원봉사자들이 그린 거리벽화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로 거듭났다. 부산시 홈페이지

대부분 경제적으로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은 싼 방값과 시내에서 지낼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안동네’로 몰려들었다.

행정당국은 불법으로 들어선 판잣집을 밀어내기 시작했지만 주민들은 28번 철거당하면서도 계속 집을 새로 지었다. 불법건축물 확산을 막기 위해 당국은 전기와 수도를 끊고, 증·개축을 금지했다. 주민들은 이웃집에서 몰래 전기를 끌어와 사용했고, 공동우물을 팠다. 낡은 집에선 화재가 수시로 일어났고, 2003년 태풍 ‘매미’로 80채 이상의 집이 파괴됐지만 주민들은 협동해 복구했다.

조 연구원은 “마을 주민들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존하기 위해 공동으로 문제에 대처하고 행동하는 법을 체화했고, 이로부터 끈끈한 유대감이 생겨났다”고 밝혔다. 물론 “술과 잦은 빈도의 갈등”이 있었지만 “공권력에 대한 피해의식과 주위의 부정적 시선, 힘든 노동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2008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안동네’에서 진행된 벽화 그리기 사업은 이곳 주민들을 변모시켰다.

당초 사업에 부정적이던 주민들은 끈끈한 유대감을 통해 적극 협력했다. 마을을 방문하는 외지인들을 반가운 손님으로 맞기 위해 “옷차림에 신경쓰고, 쓰레기를 치웠으며, 벽화에 낙서를 하거나 가리는 행위도 서로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008 대한민국 공공 디자인대상’ 주거환경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 연구원은 “다양한 형태의 행정적·물리적 압력이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지만, 사회적 연대가 이들의 자존감을 부분적으로 회복해 주었고 이들의 삶이 정상화되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마을과 새마을-개발과 생태의 민속학’을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조 연구원의 논문과 같은 사례보다는 낙후지역을 무작정 개발하는 바람에 결국 ‘묻혀버린 가치’들에 대한 발표가 더 많았다. 이창언 영남대 교수는 도시빈민층 거주지였던 대구의 비산1동 날뫼지역에서 진행된 도시재개발사업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그는 “1980년대까지 날뫼지역은 가난하지만, 다양한 삶의 실천을 통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사회적 약자들의 공간이었다”며 “좁은 주거공간에서 경험과 실천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면서 때로 충돌하고, 때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개발사업 이후 “건물주는 빚에 시달리고, 가난한 세입자는 그들만의 공간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야 했으며 또 다른 빈민지역이 양산”됐다. 이 교수는 “도시 낙후지대에서 진행되는 주거환경 개선사업은 빈민의 입장에서 볼 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조성한 공동체적 터전의 상실을 의미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권혁희 서울시립대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서울 아현동 뉴타운 개발에 대한 연구를 통해 도시공동체 속에 살아있던, 사라져가는 ‘마을’에 대해 발표했다. 오랫동안 공동체 관계를 형성했던 지역 주민들은 재개발로 이주한 뒤에도 ‘아현동 빈 땅’에 마련된 임시 노인정으로 찾아와 ‘마을의 축소판’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는 도시 속 ‘마을’의 가치에 대해 “주거지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걸쳐 있는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적 질서는 이웃을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뉴타운의 현실에 어떠한 가치가 부가돼야 할지 고민하도록 요구한다”고 말했다.

빈곤 퇴치 운동의 기반이 됐던 루이스의 주장이 본래 취지와는 달리 “가난한 사람들을 낙인찍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현실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조관연 연구원은 “지역재생은 빈곤지역의 ‘비가시적 존재’들을 천국에서 살도록 만드는 개발이 아니라 이들을 지옥에서 구하는 것에 최우선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경향신문 201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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